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임지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우리는 가족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주인공인 15살 은유는 엄마가 없어서 아빠와 단둘이 산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집에 ‘존재'만 하듯 은유에게 무관심할뿐더러 엄마 얘기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여자’를 만나 재혼하기로 하자, 아빠는 예전과 다르게 은유를 다정하게 대한다. 은유는 이런 아빠의 행동을 가식이라고 여기고 그를 원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유는 아빠의 설득으로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라는, 우편물이 6개월에서 1년 후 느리게 전달되는 우체통에서 1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기적처럼 1980년대에 사는 또 다른 은유에게 도착하고, 둘은 이 신비한 인연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다르게 가서, 은유의 세계에서 몇 달이 지날 때 과거에서는 몇 년이나 더 흘러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과거의 은유는 어느새 대학생이 된다.


은유는 과거의 은유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비로소 아빠를 이해한다. 가족 관계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은유는 과거의 은유에게 아빠를 원망한 수많은 순간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과거의 은유도 초등학생에서 대학생까지 성장하며 겪은 일들을 편지에 담으며 은유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이렇게 둘은 가까워진다. 과거의 은유는 엄마와 크게 싸운 후 집을 나가 놀이터에서 혼자 버티던 중 자신을 찾아온 언니가 한 말을 알려준다. “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과거의 은유는 편지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나는 이 부분에서 언젠가 엄마와 말다툼한 후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유야, 원래 가족을 제일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거야.” 나는 그동안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신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가족은 매일 보는 편한 사이라는 생각만으로 더 소홀하게 대했다. 이 부분을 읽고 내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짜증 나는 건 다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 여겼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짜증이 나고 화도 날 수 있는데 나는 정작 실컷 소리 지르면서 엄마 아빠에게는 지나치게 완벽함을 요구했던 것 같다.


은유는 과거의 은유에게 아빠를 찾아 엄마에 대한 비밀을 밝혀달라고 부탁한다. 과거의 은유는 당시 대학생이던 은유 아빠를 찾는 데 성공하고, 의도치 않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은유는 아빠가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서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받는다. 편지에는 자신을 향한 아빠의 진심과 말하지 못했던 엄마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있었다. 사실 과거의 은유는 은유의 엄마였다. 과거의 은유는 임신한 후 암에 걸려 죽어갔지만 뱃속의 은유는 포기할 수 없어 자신을 희생했다. 아빠는 은유가 성장하며 점점 엄마와 닮아가는 것을 보는 게 두려웠다. 은유의 생일이면 그날 은유를 낳다가 숨을 거둔 은유 엄마가 생각나서 생일도 챙겨주지 못했다. 은유의 모습에 홀로 행복을 느끼는 것조차 은유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러다가 은유가 걸음마를 막 시작했을 때 쯤 교통사고를 당해 이마에 흉터가 남자 아빠는 은유조차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운이 닥치는 것 같았던 아빠는 슬픔과 죄책감에 은유와 멀어지고 만다.


과거의 은유는 자기 딸 은유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지금까지 나는 내 곁에 있어 주는 ‘가족’의 존재를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가족과 싸우기라도 하면 ‘왜 엄마 아빠는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줄까’하고 속상해했다. 나는 이런 가족과의 다툼을 과도하게 신경 쓰느라 아빠가 퇴근할 때 사 오는 붕어빵, 주말에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은유가 그렇게 원했던 아빠와의 대화, 아빠가 해주는 따뜻한 밥, 그리고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나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가족의 존재 자체를 감사해할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은유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을 당연하게 여겼던 내 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당장의 생활에 치여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점점 더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죽지만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게 공기이니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그래서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잠시 잊고 있었지만 실은 무척 소중한 무언가가 있나?’하고 가만히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내 곁에서 나를 위해주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가족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사실 그건 절대로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 언제나 감사히 여겨야 할 기적인데 말이다. 이제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항상 감사하고, 말다툼했을 때는 엄마, 아빠만 탓하는 대신 내 행동을 반성하며 먼저 사과하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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