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원래 우리와 달라'라는 거짓말



임지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아시아인 혐오부터 2020년 여름 미국을 뜨겁게 달구웠던 #BlackLivesMatter 시위까지, 세계는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종에 따라 인간의 우월함이나 열등함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인종인 두 집단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옳지 않다. 인종이 다르다고 해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이다.


한국인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다룬 박범신의 <나마스테>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회사의 경제적 사정이 악화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난로를 차지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춥고 배고프고 천대받도록 애당초 설계된 종족들에게 난로가 뭐 필요하냐"고 소리지르고, 결국 난로를 얻지 못하자 경찰까지 부른다. 경찰에게 자신이 불법 체류 중이라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는 절망적인 생황에서 네팔 출신 노동자인 카밀은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난간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나 그가 뛰어내린 이유는 단순히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자신을 자극하는 한 한국인 노동자의 눈빛을 보고 한국의 양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밀은 양반처럼 절대로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비굴하게 계단 쪽으로 도망가는 것 대신 뛰어내리는 쪽을 택한다.


카밀의 이야기에서 인종의 차이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공통점이 드러난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취급한다. “회사도 어려운데 가뜩이나 나보다 못한 것들이 내 일자리를 뺏는 걸 참을 수 없어"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열등한' 외국인 노동자인 카밀에게서 한국인만이 지닌 줄 알았던 양반 정신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인종에 상관없이 비슷한 상황에서 공통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남아 출신이라고, 피부색이 어둡다고 해서 추위와 배고픔, 차별과 멸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내야 한다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생각은 말도 안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출신 나라만 다를 뿐 그들과 똑같이 춥고, 배고프고, 무시당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분노가 끓어오른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인간으로서 한국인들과 완전히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천재 뮤지션 돈 셜리와 그의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 사이의 우정을 다룬 영화 <그린 북>에서도 마찬가지다. 셜리과 토니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불시검문을 받게 되는데, 토니는 경관의 인종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발언을 참지 못하고 결국 폭력을 사용한다. 둘은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고, 셜리가 바비 케네디에게 연락한 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지만 서로 크게 싸우게 된다. 셜리는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다. 난 평생 흑인 차별 언사를 참아왔는데 당신은 그걸 못 참았나?”하며 토니에게 화를 낸다. 셜리도 부당한 차별에 태연한 듯 대응했지만, 결국엔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마스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 노동자들의 멸시를 견뎠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울부짖는다. “그래서 내가 흑인답지 못하고, 백인답지 못하고, 남자답지도 못하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 셜리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에게 무시당했고, 유명한 피아니스트라는 이유로 다른 흑인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남자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는 그동안 사람들의 차별과 멸시에 짓눌려 살아와야 했다.


결국 인종차별은 그저 인종에 따라 화장실이나 버스 좌석 등을 구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정 인종인 사람들의 ‘인간다움'을 부정하는, 전 세계가 힘을 합쳐 꼭 뿌리 뽑아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나마스테>와 <그린 북>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첫 걸음은 우리 모두가 겉모습은 각각 달라도 모두 같은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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